그냥 글을 써 봅니다

아침 단상

Tiboong 2024. 8. 19.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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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 그 남자는 왜 넓은 사거리에서 무릎을 꿇었을까...?

 

조금 늦게 일어났다. 

평소보다 조금 빠른 템포로 나갈 준비를 한다. 새벽 5시반. 강아지는 새벽 4시부터 내 옆에와 끙끙 거렸다. 실외배변을 철칙으로 아시는 분이라 하루 한번 산책으로는 배변 욕구를 해소하긴 어려운가 보다. 배변 패드도 있는데 그냥 볼일 보시면 나도 편하겠구만... 계절이 여름이고 새벽 나절에나 잠깐 기온이 떨어질 뿐 저녁에 해가 지고 나서도 뜨거워진 땅바닥의 지열은 가라앉을 줄 모른다. 그래서 새벽에만 40분에서 한시간 정도 산책을 한다. 

 

통풍이 잘 되는 나일론 티셔츠를 우연히 구입한 뒤로 여름에 산책할 때는 이 셔츠만 입는다. 땀이 흡수되지 않아 옷이 축축 늘어지지도 않고 몸에 달라붙지도 않아서 좋다. 피부가 예민한 편이라 까실까실한 섬유가 닿으면 따갑고 간지럽고 그랬는데 이 셔츠는 그런게 없다. 반바지에 모자를 쓰고 운동화를 신고, 강아지 하네스를 채우고 집을 나선다. 조금 선선한 느낌이긴 하지만 상쾌한 공기를 느끼기는 아직 이른 것 같다.

 

귀에 에어팟을 꼽고 음악을 듣는다. 명상을 하듯이 한걸음 한걸음 강아지 발걸음에 맞춰 동네 한바퀴를 시작한다. 코스는 여러개가 있지만 오늘도 녀석의 발길 닿는 데로 간다. 오늘은 중간 정도 거리의 코스다. 코스의 중간 쯤에 사거리를 건너야 한다. 동서로 4차선 남북으로 2차선 도로가 교차하는 곳이다. 건너는 방향 대각선에 남녀가 마주보고 서있다. 마침 신호를 기다리느라 멀~찍이 두 연인을 관찰한다. 시간은 6시 10분쯤 됐다. 덩치가 큰 남자가 소매가 없는 검은색 셔츠를 입고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었다. 슬리퍼가 얇아서인지 남자의 발이 두꺼워서인지 처음엔 맨발인가 싶었다. 남자는 두꺼운 팔을 들어 여자의 어깨를 손으로 잡고 있었다. 반면 여자는 외출복인듯 회색 진바지에 어두운 색 블라우스를 입었다. 

 

'새벽까지 마셨나?', '데이트 한 건 아닌 것 같은데',
'같이 집에 있다 나왔나?', '남자네 집에 있다가 여자가 집에 가는 중 인가?'

 

별의 별 생각이 다 드는 와중에 갑자기! 남자가 여자의 팔을 부여잡고 무릎을 꿇었다!!!

 

'뭐야뭐야!!!'

 

이 새벽에 동네에서 꽤나 넓은 공간인 사거리 교차로 한 구석에서 두 연인이 뭘 하고 있는 걸까? 맞은 편에 학생인 듯한 남자가 배낭을 메고 서있었고 다른 편에 길을 건너려는 사람이 있었다. 새벽에 잠 못 이루는 어른들이 산책을 나올 시간이다.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는 뭐라고 낮게 애원하는 듯 했다. 너무나 식상한 장면이긴 하지만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마침 보행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어 강아지와 나는 길을 건넜다. 소심한 성격의 나는 두 연인을 못 본 척 지나칠 수 밖에 없었다. 혹시나 남자가 술이라도 마셨다면 아침 새벽 강아지와 함께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도 있을 거라고 본능이 잡아 당긴 것 같았다. 힐끗 쳐다본 그 여자는 화를 내기보다 마치 남자를 달래듯이 토닥이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랑'일까? 남자는 저 여자를 사랑하는 걸까? 저 여자도 저 남자를 사랑하는 걸까?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사이라면 남자의 복장이 너무 불량하므로 그렇게 볼 수 없겠고, 오래된 연인 사이라면 길 한복판에서 '신파'를 찍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그럴수도 있겠다. 어쩌면 너무 오래되서 이런 일이 너무 자주 있던 일이라 여자는 당황하지도 않고 남자를 토닥였을지도 모르고 남자는 매번 무릎을 꿇어 여자를 붙잡았었기 때문에 또 같은 방법을 썼을 수도 있겠다. 어쨋든 이 장면에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남자 쪽이라 봐도 무리가 없지 않을까 싶다.

 

사랑일까? 집착일까?

 

마치 이제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려는 여자의 행동은 이 관계가 그다지 건강하지 않은 관계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상대방에 대한 집착으로 살인을 벌이는 내용의 이야기는 무궁무진하게 많다..이 장면 하나로 이야기를 만든다면 어떤 장르의 어떤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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