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압기라고 하면 마치 그 단어가 주는 느낌은 뭔가 들어올려 주는 무언가를 뜻하는 기계를 지칭하는 것 같다. 좀 더 부드럽고 세련되고 친근한 느낌을 주는 이름이라기 보다는 이름만 들어도 뭘 하는 기계인지 알려주기위해 붙여진 이름인가보다.
양압기 : 陽壓機, PAP, Positive Airway Pressure
양압이란 주변의 압력보다 조금 높은 압력 상태를 말한다고 한다. 그러니 이름만 들으면 주변의 압력보다 조금 높은 압력을 만들어주는 기계쯤으로 상상할 수 있겠다. 이 양압기를 쓰게 된게 한 2년이 좀 넘었나보다.
코골이가 너무 심해서 신혼 초에는 아내가 자기보다 먼저 잠들지 말라고 매일 경고를 했었다. 술이라도 먹고 들어오는 날에는 거실이나 서재에서 자야했었고 가장 심각했던 것은 자도 자도 피곤이 풀리지 않고 회사에 출근해서도 졸음을 떨쳐내지 못 해 오전이고 오후고 계속 졸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일에 집중도 할 수 없고 능률이 오르기는 커녕 일을 못 하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주변에 몇몇 사람들이 양압기를 알려줬다.
실제 사용하고 있는데 양압기를 쓰게 된 이후로 새로운 삶을 살게됐다는 것이다. 한 사람은 코골이와 수면 무호흡증 때문에, 한 사람은 하지 불안증 때문에 양압기를 쓰기 시작했단다. 그걸 사려면 꽤 큰 돈을 지불해야만 했다. 할부로 살까를 고민하고 있던 중에 양압기 대여료를 건강보험에서 지원해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수면다원검사를 받아 의사로부터 처방을 받아야만 했다.
그 '수면다원검사'라는 것이 이만저만 귀찮은게 아니다. 진찰 받고 날짜를 정해 하루저녁을 병원에서 잔다. 수면무호흡이 어느 정도인지 측정하고 양압기를 써야된다는 진단이 나오면 양압기의 압력을 조절하기 위해 하루를 더 자야한다. 다행히 입원으로 분류되서 의료실비 보험 청구가 가능했다. '수면다원검사'를 받고 나서 의사를 만난 나는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잠을 자다가 호흡이 막히면 뇌는 살기위해서 깨어난단다. 그러니 수면 무호흡이 생기면 뇌는 깨어나는 것이다. 그렇게 수면 무호흡이 생기는게 자는동안 1시간에 62회란다.
1분에 한 번씩 깨는 거다.
그러니 아침에 일어나도 피곤이 가시지 않고 힘들고 멍하고 하는 거였다.... 충격이다... 잠을 안자고 살았다니...
명석했던 머리는 멍청해졌고 산소를 공급받지 못 하고 알콜만을 공급받은 나의 뇌는 어떻게 되었을까?!!! 불쌍한 내 몸... 아버지로부터 내려온 나의 코골이가 나의 학창시절과 대학시절과 직장 생활을 망쳐왔었다니... 이럴수가...
이런 기계가 진작에 있었다면 '수면무호흡'이 심각한 병이란느 걸 일찍 사람들이 알았다면 나의 이런 상황은 좀 더 빨리 개선될 수 있지 않았을까? 양압기 진단을 받고 새 양압기를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마치 코가 날씬한 코끼리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다행히 잠에는 그닥 예민하지 않은 편이라 하루만에 적응해 버렸다. 코끼리 코 같은게 달린 기계를 가져와서 처음 잠자리에 들려고 누웠던 날, 식구들 모두가 그게 뭐냐며 놀려댔다. 그럴만도 하다. 산소호흡기를 코에다 붙여놓은 것 같은 모양에다 뒤로 밴드를 둘러야 했기 때문에 약간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연출 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첫날 밤을 지내고 다음 날 아침, 나는 하루 밤 사이에 달라진 몸 컨디션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회사에 가서도 오전, 오후 내내 졸리지 않았다. 충격이다... 지하철에서도 잠들지 않았다. 예전에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앉기만 하면 잠이 들곤 했는데 이제는 책도 보고 음악도 들을 수 있었다. 오히려 잠이 들면 코를 골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정도가 되었다.
어릴 때 부터 비염이 있어서 코가 잘 마르고 막히고 그랬는데 양압기에는 가습기능도 있고 온도 조절도, 분무량 조절도 가능했다. 그 이후로 비염때문에 병원에 가는 일은 없어졌다.
마치 암흑속에서 살던 원시인이 동굴에서 나와 신세계를 만난 기분이랄까... 양압기는 출장을 갈 때도 여행을 갈 때도 꼭 가져가는 필수품이 되었다. 양압기의 원리는 매우 간단하다. 원리만 들으면 조금 겁이 나기도 하지만 실제 경험해보면 별로 거부감이 들거나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될 거다. 양압기가 코 속에 바람을 불어넣어 호흡할 수 있는 기도를 확보해 주는 것이다. 호흡은 코로만 하게된다. 코로 바람을 불어넣으면 숨을 어떻게 쉬냐고 걱정할 수도 있는데 코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데는 전혀 불편함이 없다. 비중격이 막혀 호흡이 항상 불편했던 사람들은 양압기 사용이 더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더라.
양압기를 사용하고 나서 잠의 중요성을 더욱 크게 실감하게 되었고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잠을 잘 자야한다고 강조하고 다니는 습관이 생겼다. 잠을 자야 머리 속의 노폐물도 빠지고 그런단다. 수면의 질과 수면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양압기를 쓰고 알게되었다. 또, 잠을 못 자면 살이 찌고 잠을 잘 자면 살이 빠지는 나의 이상한 체질도 왜 그런지 조금 알게 되었다.
자도 개운하지 않고 식구들이 코 골이가 심하다고 타박 받는 분들 특히 '드르렁~' 하다가 숨 참고 '푸루루~'하시는 분들은 꼭 수면다원검사 받아서 양압기 처방 받으시라고 권해드린다.
https://youtu.be/oGc9VmylgM0?si=p3SClQboFqD12N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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