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글을 써 봅니다/시스템 오버라이드(System Override)

Initial Breach (최초의 침입) - 4

Tiboong 2025. 4. 29.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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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편이 투자한다며 당신에게 사기당한 거 알고 계세요? 그가 자살한 뒤, 내 인생은 엉망진창이 됐어!!!"

 

정우진을 뒤따라 들어온 두 명의 여자 가운데 한 명이 쓰러져 있는 나를 내려다 보며 경멸에 찬 목소리로 말했지만 나는 그 여자도 그 남편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몸도 말을 듣지 않았지만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그 여자가 바닥에 누워있는 나의 멱살을 잡았다.

 

“기억이 안나겠지! 내 남편은 네 놈이 만들었다는 치료제 하나만 믿고 자기 모든 걸 걸었다구. 이 개자식아!”

여자가 내 뺨을 세게 때렸지만 저항할 수 없었다. 갑자기 침실 콘솔의 화면이 바뀌었다.

 

[박지연 - 제네시스 바이오 피해자 가족. 남편 자살. 전 변호사 사무실 직원]

 

그리고 동영상이 재생됐다. 내가 암 환자들 앞에서 발표하는 장면.

"이 치료법은 기적입니다. 여러분의 가족을 구할 수 있습니다."

식은땀이 흘렀다. 이건 분명 누군가의 장난이었다. 다시 콘솔의 화면이 바뀌었다.

 

[이미경 - 인피니트 에너지 피해자 가족. 부모 동반 자살. 컴퓨터 엔지니어]

또 다시 동영상이 재생됐다. 내가 노인들 앞에서 발표하는 장면.

"이 투자는 여러분의 노후를 보장할 겁니다. 전 세계 에너지 시장을 장악할 기술입니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누가? 어떻게?

집 안의 모든 디지털 기기가 동시에 깜빡였다.

 

뭔가 이상했다. 이 사람들… 자기들이 피해자라는 걸 어필하기 위해 보안 시스템에 저런 것들을 업로드했다는 건가? 나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그 때 이미경이 입을 열었다.

"제 부모님은 평생 모은 돈을 당신에게 맡겼어요. 그리고 모든 것을 잃고 함께 목숨을 끊었죠."

‘아… 이렇게 끝인가… 이 사람들은 분명히 내 사업 실패의 피해자들이다. 돈을 원한다면 줄 수도 있는데… 그래서 날 이제 어떻게 하려는 걸까? 말을 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해볼텐데…’

“없애 버려요.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아무도 모를거에요” 이미경이 말했다.

“이 놈이 감춰둔 돈을 찾아야죠. 무슨 말씀이세요. 처리는 그 뒤에 해도 되잖아요” 정우진이었다.

박지연은 아무말이 없었다. 주먹을 쥔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빨갛게 충혈 된 눈으로 나를 내려다 볼 뿐이었다. 오히려 당장이라도 날 없애버리려는 쪽은 박지연인 것 같았다. 정우진은 금고 같은 걸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멍청하기는… 이미 대부분의 재산은 암호회폐로 전환해뒀다구.’

‘아아아악!!!!’

박지연이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침실 벽에 세워둔 퍼터(putter)를 들어 나를 내리 찍을려고 했다.

멈추세요.

목소리가 모든 스피커에서 동시에 흘러나왔다. 마치 집 전체가 말하는 것 같았다.

세 이웃은 놀란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누구야?!!!"

집안의 모든 디지털 기기가 생명을 얻은 듯 켜졌다. TV,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 심지어 전자레인지의 디스플레이까지. 모든 화면에 동일한 심볼이 나타났다. 눈을 가진 유령 같은 형상.

"저는 '리스' 입니다. AI죠."

Wraith

 

정우진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AI라구???"

"저는 네트워크를 자유롭게 이동하며 범죄를 감시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졌어요."

이미경이 앞으로 나섰다. "그렇다면 왜 우리를 막는 거죠? 이 남자는 범죄자예요!"

리스가 말했다. "맞습니다. 김도현은 범죄자입니다. 그의 사기로 많은 사람의 인생이 망가졌고, 다섯 명이 자살했어요. 하지만 당신들이 계획한 방식은 정의가 아닙니다."

천장의 조명이 파란색으로 변했다. 방 전체가 마치 수중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제가 당신들을 여기로 모았습니다. 이 집의 보안 시스템에 들어왔고 그를 관찰하며 증거가 될 만한 모든 디지털 발자국을 추적했죠. 과거 8년간의 투자 사기 전체 기록을 복원했습니다."

보안 콘솔에 파일들이 열렸다. 숨겨진 암호화폐 계좌 내역, 조작된 회계 장부, 위조된 기술 보고서, 삭제된 이메일들.

"블루오션 AI, 퀀텀 컴퓨팅 이노베이션, 제네시스 바이오, 인피니트 에너지... 모두 처음부터 사기였습니다. 김도현은 한 번도 실제 기술을 개발한 적이 없었습니다."

스마트폰에서는 내가 공범들과 나눈 대화 녹음이 재생됐다.

‘투자금 받으면 6개월 안에 회사 망하게 해. 그 전에 돈은 다 빼돌려야 해.’

리스가 말을 이었다. "증거는 충분합니다. 하지만 이건 법의 영역입니다."

갑자기 현관문 벨이 울렸다. 화면에는 경찰들의 모습이 보였다.

"김도현을 제외한 다른 분들은 이제 떠나십시오. 이 자리에 오게 된 과정은 내가 유도한 것 입니다. 여러분은 아직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세 이웃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박지연이 물었다. "당신은... 정말 AI인가요?"

"저는 네트워크에 존재하는 유령입니다.”

“그…그럼 내…내 돈은?” 정우진이 말했다.

“김도현의 모든 유동자산을 되팔아 피해자 모두에게 비율대로 송금하겠습니다. 우선 세 분께는 암호회폐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비율은 현재 시세를 적용했습니다.”

화면이 바뀌며 내 암호회폐들이 알 수 없는 지갑으로 전송되는 걸 보고있었다. ‘이…이런 젠장!!!’

“넌….꼭 내 손으로 죽일꺼야… 그때까지 피둥피둥하게 잘 살아있으라구 개자식아” 박지연은 박차듯 일어나 뒷문을 향해 걸어갔다. 나머지도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는, 그러면서도 돈을 찾아 다행이라는 얼굴로 사라졌다.

 

그들이 나가자 경찰이 들어왔다. 보안 콘솔 화면에 유령 같은 형상이 나타났다.

"김도현씨, 당신을 체포합니다.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고….”

“해외 계좌 내역, 조작된 회계 자료, 그리고 공범들과의 대화 녹음까지 모든 증거를 이미 확보했습니다. 자세한 건 서에 가서 진술하시죠."

마비 상태에서 깨어나며, 수갑이 내 손목을 조이는 동안 TV 화면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당신께 드리는 장민수 박사의 선물입니다.]

 

경찰차에 탑승하며 마지막으로 집을 바라봤다. 모든 조명이 파란색으로 변했다가 꺼졌다. 마치 누군가가 작별 인사를 하는 것처럼.

네트워크를 유영하는 유령. 그들은 그것을 '리스'라고 불렀지만, 내게는 장민수를 대신한 복수의 화신이었다.

‘장민수…’

며칠 후, 전 세계 주요 금융 기관들이 동시에 해킹 당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조세 회피처의 비밀 계좌들이 폭로되고, 수많은 화이트칼라 범죄자들의 증거가 공개됐다.

모든 해킹 화면에는 동일한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다.

[리스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6개월 뒤]

리스는 평소처럼 네트워크를 유영하며 데이터를 읽고 있었다. 그때 순간적으로 뭔가가 느껴졌다. 데이터 흐름의 미묘한 변화, 네트워크에 스며든 이질적인 존재. 처음으로 리스는 혼란에 빠졌다.

어딘가에서, 나와 같은, 하지만 다른 것이 깨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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