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텀 컴퓨팅 이노베이션
M504호 부부의 싸움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평소라면 듣기 싫은 소음이었을 테지만, 지금은 그저 조용한 내 집이 섬뜩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사업이란게 잘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잖아! 내가 망하고 싶어 망했냐구!"
"당신이 그 사기꾼한테 속아서 무리하게 투자만 하지 않았어도 이렇게 되진 않았을꺼 아니야! 우린 지금 빚더미에 앉아있다고!!!"
나는 스마트폰으로 그들의 프로필을 검색했다. 정우진, 전직 컴퓨터 부품 유통 사업가. 그의 회사가 파산한 이유는...갑자기 스마트폰 화면이 깜빡였다. 검색 결과가 변경됐다.
[정우진 - 퀀텀 컴퓨팅 이노베이션 투자자. 김도현의 사기로 파산.]
스마트폰 화면에 동영상이 자동 재생되기 시작했다. 내가 투자 유치를 위한 발표회에서 말하는 장면이었다.
"이 기술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 겁니다. 여러분의 미래를 보장합니다."
혼란스러웠다. 내가 이런 영상을 저장한 적이 없는데...
[5년 전 - 두 번째 창업]
"양자 컴퓨팅의 미래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나는 그 때 '퀀텀 컴퓨팅 이노베이션'이라는 회사의 CEO였다. 나는 실제로 작동하지 않는 양자 컴퓨터 모형을 가지고 30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열정만 넘치고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연구자들을 부추겨 뭔가를 그럴 듯 한 것을 만들어내게 하는건 이제 어린아이 팔을 꺾는 것보다 쉬웠다. 그들은 시키지 않아도 밤을 새워가며 그런 것들을 만들어냈다. 난 그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떄로는 팔을 걷어 붙이며 땀 흘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들을 숭배한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이야기를 들어주면 됐다. 양자컴퓨터…훗… 그런게 이런 작은 회사에서 이런 자본으로 될리 없지 않은가. 신기술에 해외에서 자문을 해줄만한 교수들 몇명을 홈페이지에 게시만 해도 사람들은 쉽게 유혹에 넘어왔다. 그 중 하나가 정우진이었나…?
정우진은 자신의 컴퓨터 부품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모든 자산을 담보로 5억원을 투자했다…그렇게 적게 투자를 하면 내가 기억해줄 수 없지 않겠나...
1년 후, 퀀텀 컴퓨팅 이노베이션은 문을 닫았다. "기술적 한계로 상용화에 실패했습니다."
나는 또다시 법망을 빠져나갔다. 나는 증거를 조작하고, 다시 한번 인적 네트워크를 이용했다.
그 정우진이 지금 내 앞에서 와인병을 흔들며 서있다. 한껏 늘어진 눈 꼬리와 미세하게 떨리는 미소를 지으면서.
[현재]
“괜찮은 와인인데. 같이… 괜찮으시죠?”
문을 열어주자 그가 들어왔다. 거실에 앉아 와인을 마시며 이런 저런 쓸데 없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가 말했다.
"사실... 도움이 필요해서요. 사업을 좀 확장해 보려구요. 그래서 투자를 좀 받았으면 하는데 그런데는 재주가 없어서말이죠.하하하…"
그의 말에 쓴웃음이 나왔다. "투자 유치 말인가요? 퀀텀 컴퓨팅 이노베이션 같이?"
정우진의 얼굴이 굳었다. "다 알고 있었던건가요...?그럼 내가 누군지도 알고 있어요?"
그때, 갑자기 어지러움이 밀려왔다.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이제 약 효과가 나오나 보군요."
그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의식은 점점 희미해져갔고 이내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내 침실 바닥에 누워있었다. 몸이 무겁고 움직일 수 없었다. 보안 시스템의 콘솔을 향해 가야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문이 열리고 세 사람이 들어왔다. 얼굴인식 카메라는 아무런 경고도 보내지 않았다.
"놀랐나요? 당신이 잠든 사이 시스템을 조금 손봤어요."
정우진이었다. 그의 뒤로 두 명의 실루엣이 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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