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 하고 웃음이 나왔다.
2021년도에 큰 맘먹고 구입했던 도마가 있었다. 도마를 6만원이나 주고 살 일이 없던 삶인데 그 즈음에 아마 요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여서 구매했을 것이다. CJ에서 나온 밀키트로 이런저런 음식을 해먹고 나니 재료만 사서 해보는 것도 재밌겠다 싶었다. 뭔가에 관심이 가기 시작하면 장비에 눈이 돌아가게 되어있다. 나만 그런가... 중식도도 갖고 싶고 냄비도 갖고 싶었는데 참았다. 후라이팬은 샀다... 무쇠팬이랑 웍을 샀는데... 185cm에 100kg이 나가는 내가 들기에도 손목이 쩌릿하게 무거우므로 비추다.. 관리도 힘들다.
소셜펀딩으로 구입한 그 도마는 예뻤다. 나무 조각을 뽄드로 붙여서 만든 제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나무 무늬가 예쁘게 살아있던 그것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쓰기가 너무 아까운 이유도 있었지만 구글링해본 결과 엔드그레인 도마는 관리를 잘 해줘야 한단다. 오일도 먹이고 잘 닦고 그래야 된단다...
'아... 김치는 썰면 안되겠다...'
도마 관리하는 오일도 사야할 것 같고 이래저리 필요한 부속이 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수납장 한구석에 잘 모셔뒀다. '아... 상전을 모셨구나' 싶었지만 언젠가 저 도마로 요리를 할 생각을 하면 기분이가 좋았다.
수납장에 넣어놓고 가끔 한번씩 꺼내보고 했는데 요리하는 릴스를 보던 아내가 자기도 콘텐츠를 찍어봐야겠다면 도마 좀 써도 되냐고 물었다. 더 두면 똥 될 것 같아서 그러라고 했다. 그러고 시간이 좀 지났을까? '어머!!!' 하는 소리에 놀라서 부엌을 바라보니 아내가
'저...저거 왜저래???' 그러는거다. 옆을 보니 도마란 놈의 옆구리가 쩍 갈라져있었다. 나무라서 물에 닿으니 수분이 나무의 접합 부분으로 들어가 팽창해서 깨진 듯 했다.
'아... 아끼다 똥 되부렀네...' 산지도 오래됐으니 교환,환불은 안될테고... 일단 아내를 안심시켰다. '괜찮아. 당신 잘 못 아니야.'
'도마가 물에 닿아서 깨지는게 말이 안되는거지'
써보지도 못하고 폐기하게 생겨서 조금 속상했다. 미리미리 테스트를 해봤으면 이런 일은 없었겠지만 어쨋든 그동안 관리하느라 공 좀 들였을테니... 아내에게는 혹시나 방법이 없는지 판매자 한테 물어보겠다고 하고는 판매처를 검색해봤다.
'요기 잉네~'
'아직 판매중이다. 혹시나 구제받을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조심스레 물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연락처를 남기라길래 연락처와 함께 사진도 보냈다. 그랬더니 몇가지 질문이 돌아왔다.
그래서 '희망이 있는건가???!!!' 라는 기대로 정직하게 답변했다.
역시나 예상 답변...구매한지 1225일이 지났으니 교환/반품이 안된단다... 물론 1225일이 지났지만 난 어제 꺼내서 씻어본 죄 밖에 없다구... 도마를 처음 쓸 때는 흐르는 물에 씻으라고 되어있잖아.
첫 사용시라고 되어있지 받자마자라는 말은 없지않나. 조금씩 약이 오르기 시작했다.
'아쉬우시겠지만 해당 제품은 말그래도(아마 말 그대로 겠지...) 살아있는 나무다보니...'
살아있다구???!!! 아니... 잘려져 토막이나서 도마가 된 나무가 살아있다니 이게 무슨... 말이야 방구야... '허허~'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 나도 진상부려 어떻게든 환불 받아내려고 한 것도 아니고 고작 몇만원짜리 제품을 3년이나 보관했다가 클레임 걸려고 한 건 아닌데 이미 죽여서 토막낸 나무를 살아있다고 우기니... 이미 틀어진 나무를 프레스로 누른다고 다시 펴지는 것도 아니고 본드로 붙인다고 붙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나름 자부심 있는 제품을 판매하는 것 같으니 이런 상황이 어떻게 발생을 한 건지 왜 잘 보관해둔 나무가 물에 닿았다는 이유로 깨지는 건지 설명을 좀 해주면 좀 위로가 됐겠는데...
'살아있는 나무'를 물에 씻어 옆구리를 터뜨린게 내 잘못이라는 말을 되풀이 하니
슬슬 열이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걍 잊기로 했다... 마지막 메시지에 있던 어이마저 다 털렸기에...
도마 전용 오일을 먹이면 '100% 원상복구는 어려울 순 있으나, 살아있는 나무다 보니 조금은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아...'
오일 먹이면 틀어진 나무가 다시 돌아오고 터진 옆구리가 다시 붙을 수도 있다... 하아... 그러면서 문의 주셔서 감사하단다...
그래... 역시나... '다이소' 플라스틱 도마만 쓰던게 무슨 비싼 나무도마를 쓰겠다고....6만원짜리 도마가 남들이겐 비싼게 아닐 수도 있겠지... 역시나 나 같은 빈민이 쓰기엔 좀 사치스러웠던건 사실이니... 점심엔 순대국이나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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