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글을 써 봅니다

누구의 잘못인가...

Tiboong 2024. 11. 21.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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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저쪽으로 좀 가주시면 안되요?'

 

한 팔로 그녀를 안은 키가 큰 낯선 그 여자는 나에게 말했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키가 큰 그 여자가 그녀에게 물었다.

'괜찮아요? 어디가 아파요?'

'아파요...'

흐느끼며 그녀가 처음으로 꺼낸 한마디였다. 난감했다.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내가 뭘 잘 못 했을까...

어디서 부터 잘 못 됐을까...

 

---

 

출근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까지 마을버스로 세 정거장. 50미터 앞에 버스가 섰다. 뛰어봤자 그냥 갈테고 뛰는 모습을 본 아저씨가 나를 기다려 준다면 승객들에게 민폐일테다. 그보다 더 큰 걱정은 그 안에 탄 사람들이 백팩을 매고 뒤뚱뒤뚱 뛰어가는 내 모습을 보고 웃참을 하고 있을 모습이었다. 그냥 보낸다.

다음 차가 올 때까지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여긴 마을 버스가 없이는 큰 길로 나갈 방법이 자가용 밖에 없는 동네다.

 

걸었다.

 

걸어가면 15분 정도 걸린다.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중에 열차가 들어왔다. 용산행 네 칸짜리 열차였다. 사람이 꽤 많았다. 어차피 용산까지 가야되므로 난 최대한 안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자리가 비좁아서 마주앉은 의자 사이에 선 사람들 가운데에 섰다. 그렇다 내가 서 있지 않으면 복도가 됐을 공간이다.

한 정거장, 한 정거장 지날 때 마다 사람들이 꾸역꾸역 밀려들었다. 문간에 있던 사람들이 내 옆으로 밀려와 나를 조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밀리지 않는다. 백팔십오에 백키로니까... 하지만 옴짝달싹 할 수 없다.

 

지하철 타서 가장 난감한 상황은 만원 지하철에 키작은 여인의 정수리가 내 코밑에 있을 때다. 그 여인은 모르겠지만 난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혹시나... 아주 혹시나 날 수 있는 냄새로 인해 그 여인에 대핸 선입견이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해야한다. 그 정도의 키를 가진 여인들이 내 좌우에 사람 사이에 끼어있었다. 물론 등뒤 정가운데와 좌우측에서도 사람의 온기가 느껴졌다.

 

내 좌우로 보이는 출입문에서는 정차할 때 마다 고성이 오갔다.

'고만 타요!!!'

'다음 차 타세요!!!'

사람들이 꾸역꾸역 밀고 탈 때 마다 차 안에 사람 물결이 친다. 내 앞에 서 있던 남자는 누군가 자기 몸에 닿는게 싫어서 몇번 몸부림 치더니 이내 포기하고 찌그러졌다. 꼿꼿하게 세우고 있던 허리는 사람에 밀려 새우처럼 굽었다. 차는 평소보다 느릿느릿 가는 것 같다. 아직 절반도 못 왔는데 슬슬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아저씨 조금 저쪽으로 가시면 안되요?' 나즈막이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내 이어폰틀 뚫고 들어왔다.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있는 고가의 이어폰이지만 노이즈 캔슬링 기능은 잘 쓰지 않는다.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비상상황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이 가득찬 공간에서 블루투스는 잘 끊긴다. 나도 그 사람에게 속삭였다.

 

'이쪽에도 사람있어요.'

 

더 갈데가 없다는 뜻이었다. 키가 큰 그 낯선 여인은 자기 옆에 있는 작은 여인을 한쪽 팔로 감싸고는 그녀에게 물었다.

'왜 그래요?'

'아파요...'

라고 답하며 그녀는 흐느꼈다.

 

'(헉...어떡하지...?)'

움직일 공간이 1도 없음에도 난 최대한 내 4시 방향에 있던 흐느끼는 여인에게서 떨어지려 노력했다. 

'(내가 울린 것도 아닌데... 난 밀지도 않았는데...)'

지하철 빌런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전히 정차역에서는 좌우 출입문에서 고성이 오갔다.

 

버텨야했다. 최대한 몸에 닿지 않도록, 불가항력적으로 지하철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이다 그 여인을 밀지 않도록...

슬슬 정수리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팔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고 버티고 버티던 내 엄지 발가락은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때, 열차는 '홍대입구역'에 도착했다.

 

우르르 사람들이 빠졌다. 내 좌우에는 빈공간이 생겼고 손에 들고 버티던 가방도 선반에 올릴 수 있었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등은 땀으로 촉촉 했고 목은 땀으로 살짝 젖었다. 그래도 움직일 공간이 생긴 것에 감사했다. 홍대입구역을 지나고 나니 그 두 여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전 역에서 내린 것 같다. 그렇게 힘든 상황임에도 중간에 내릴 수도 없는 상황이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준법투쟁이라고 했다. 규정대로 운행하는 거란다. 그럼 그동안은 어떻게 운영을 해왔던 걸까? 그렇게 무리해서 운행해 온 것이 이런 상황에서는 독이 된게 아닐까? 아마도 규정대로 운행해왔다면 그거에 맞춰서 살아오지 않았을까? 그렇게 무리해서 사람을 태우는데도 왜 지하철은 적자일까? 그 밀고 밀리던 사람들 중에도 무임승차 한 사람이 있었을까? 그저 지하철 타고 다니는 사람들끼리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했어야 했다. 그들의 분노는 어디를 향했어야 했나? 왜 이 사태의 책임을 져야할 사람들은 아무 말이 없을까?

 

아침 출근길 지옥같은 열차 안에서 피로와 공포에 울음을 터뜨린 그녀의 눈물은 누구의 책임인가?

 

2024년 11월 19일... 서울지하철 태업 이틀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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