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글을 써 봅니다

나는 쿠팡을 지웠다 - 작은 입도 입이다.

Tiboong 2026. 5. 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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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솔직히 토론에 약하다.

 

누군가와 얼굴을 맞대고 말을 주고받다 보면 머릿속이 자꾸 한 박자씩 늦는 바람에,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늘 후회하곤 한다. 아, 그때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그 말에는 이렇게 받았어야 했는데 하고.

 

문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렇다. 내 머릿속에 감정의 조각들은 분명히 있어서, 이건 불편하고 저건 화가 나고 그건 좀 아니다 싶은데, 정작 그 조각들이 서로 연결되지를 않는다. 하나하나는 또렷한데도 그것들을 잇는 선이 보이지 않으니, 입 밖으로 나올 때는 체계가 아니라 그냥 '주장'이 되거나 더 나쁘게는 '취향'이 되어 버린다. "난 그냥 그게 싫어." 거기서 대화가 끝나는 것이다. 나는 분명 논리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꺼내 놓으면 논리가 아니라 떼처럼 들리곤 했다.

 

그래서 글을 쓴다. 말로는 도저히 못 잇는 그 선을 글에서는 천천히 그어볼 수 있으니까. 누구를 이기려는 게 아니라, 흩어진 내 생각들이 사실은 한 줄로 꿰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취향일 뿐인지를 나 스스로 확인해보려는 것이다.

 

이 글은 그 확인의 기록이다. 얼마 전, 나는 쿠팡을 지웠다.

 

처음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리 말해 두면, 나는 쿠팡을 애용하던 소비자였다. 새벽에 시킨 것이 아침에 와 있는 그 편리함을 나라고 모르지 않았고, 로켓배송이 바꿔 놓은 일상의 속도에 나 역시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니 이건 처음부터 미워하던 사람의 험담이 아니라, 꽤 오래 곁에 두고 쓰던 것을 떠나보낸 이야기에 가깝다.

 

그러다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터졌다. 그것도 수천만 명 규모로.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 사고 자체로는 쿠팡을 손가락질할 생각이 없었다. 완벽한 보안이라는 건 어디에도 없고 규모가 크면 표적이 되는 법이니, 사고는 어디서든 날 수 있다고 여겼다. 마음이 돌아선 건 사고가 아니라 그 사고를 수습하는 태도를 보면서였다.

 

제대로 된 사과도, 무엇이 어떻게 새어 나갔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이, 쿠폰 한 장으로 덮으려 했다. 나는 그 쿠폰에서 묘한 목소리를 들었다. "뭐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냐? 근데 너, 쿠팡 없이 살 수 있어?" 잘못을 비는 자리에 사죄가 아니라 협박에 가까운 여유가 들어앉아 있었고, 사람을 고객이 아니라 인질로 보는 듯한 그 태도에 나는 슬슬 열이 받기 시작했다.

 

빠져나갈 길부터 찾는 순서

화가 난 김에 알아보았다. 그럼 이런 일은 어떻게 책임을 묻는가. 그런데 그것마저 간단치가 않았는데, 쿠팡의 모회사가 한국 회사가 아니라 미국에 등록된 법인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두고 싶다. 미국에 법인을 두는 것 자체는 쿠팡만의 별난 짓이 아니다. 델라웨어 같은 곳은 세금과 기업법 면에서 유리해 전 세계 거대 기업이 모여드는 '기업 천국'이고, 네이버나 현대차 같은 우리 대기업도 그곳에 미국 법인을 두고 있으니, 법인 구조 자체를 두고 죄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도구에는 죄가 없으니까.

 

문제는 그 구조를 무엇에 썼느냐다. 정부가 책임을 물어 총수를 동일인으로 지정하자, 쿠팡은 행동으로 책임지는 대신 행정소송으로 빠져나갈 길부터 찾았다. 책임을 묻는 국회의 부름에도 창업자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그가 미국에 머무는 사이 정작 책임의 자리에는 "의장에게 지시할 위치가 아니"라는 권한 없는 대리인이 앉아 있었을 뿐이다. 실권을 쥔 사람은 국경 밖에 있고, 추궁의 자리에는 답할 권한이 없는 사람만 남는 구조였다.

 

그리고 한국 정부의 조사가 부담스러워지자, 이번엔 미국 정치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번 돈으로 미국 정계에 수년간 백억 원이 넘는 로비 자금을 뿌렸고, 마침내 미국 의원들이 나서서 "한국이 미국 기업을 차별한다"며 한국 정부를 압박하기에 이르렀다. 정작 미국인 대부분은 써 본 적도 없는 쇼핑 앱을 두고서 말이다.

 

잘못한 사람이 사죄가 아니라 변호사를 먼저 부르는 그 순서, 책임자는 국경 밖에 두고 권한 없는 사람을 추궁의 자리에 앉히는 그 배치, 그리고 자기를 키워 준 땅을 향해 다른 나라의 힘을 빌려 칼을 겨누는 그 방향. 나는 여기서 어떤 선을 보았고, 그래서 앱을 길게 눌러 삭제했다. 와우 회원이라 묶여 있던 것들이 함께 끊긴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했다.

 

깎여 나가는 분노

여기까지가 사건이라면, 이제부터가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나는 늘 비슷한 방식으로 막혔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만큼 컸으면 잘한 거 아니냐." 성공한 기업을 일종의 권력으로 떠받들면서, 거기 미치지 못한 사람이 그들을 비판하면 그건 비판이 아니라 시기 질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손에 닿지 않으니 시다고 말하는 여우의 신 포도, 못난 자의 정신승리. 그런 딱지가 먼저 날아온다.

 

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냄비 근성이지. 어차피 금방 잊을 거면서." 그런데 이 말이 참 교묘한 것이, 화를 내면 냄비라고 비웃고 지쳐서 잊으면 거봐 냄비 아니냐고 또 비웃으니, 화를 내도 욕을 먹고 그만두어도 욕을 먹는다. 결국 화내는 일 자체를 우습게 만들어 입을 막는 셈인데, 정작 화내야 할 일에 화를 내는 것뿐인데도 그렇다.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여기서 비로소 한 줄로 꿰어졌다. "쿠팡 없이 살 수 있어?"도, "졌으면서 배 아파하네"도, "어차피 잊을 거면서"도, 사실은 전부 같은 수법이었던 것이다. 비판의 내용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 비판하는 사람에게 딱지부터 붙여 그 입을 닫게 만드는 것. 정당한 분노를 '질투'나 '근성' 같은 기질의 문제로 바꿔치기해서, 정작 책임져야 할 쪽을 슬그머니 빠져나가게 하는 것. 도그휘슬처럼, 그 수법은 늘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작은 입도 입이다

그러니 나를 루저로 분류하지 마라.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흔히 역사는 승자의 관점으로 쓰인다고들 한다. 좋다, 그 말을 일단 받아들이자. 그렇다면 묻고 싶은데, 훗날 누군가 이 시대를 기록할 때 쿠팡은 과연 어떻게 쓰일 것인가. 수천만의 정보를 흘리고도 사과 대신 변호사를 부르고, 한국에서 거둔 것을 미국이라는 국적 뒤에 숨긴 회사로 남을까, 아니면 그조차 영리한 승리로 미화될까. 이게 자본주의이고 그게 게임의 법칙이라고 말할 텐가. 정말 그런가.

 

쥐꼬리만 한 돈일지언정 나는 엄연한 소비자이고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생산자이니, 시장에 발을 딛고 선 사람에게는 그 시장을 향해 입을 열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작다고 해서 입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나는 더 이상 화내지 않기로 했다. 하긴 그렇게 뜨겁게 분노하지도 않았고, 이제 이 문제는 나라는 한 개인을 넘어 더 큰 곳에서 다루어야 할 일이 되었으니, 나는 그저 내 몫을 했을 뿐이다. 앱을 지우고, 쿠팡을 기억에서 지운다.

 

사태가 터지고 시간이 꽤 흘렀다. 사람들의 관심은 벌써 다른 곳으로 옮겨갔고, 그것을 추궁하던 이들조차 선거니 뭐니 하며 곧 다른 일로 바빠질 것이다. 그렇게 모두가 슬슬 잊어갈 무렵에 굳이 이 글을 꺼내는 이유가 있다면,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잊지 않았다고 말하기에 가장 좋은 때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잊을 거면서"라는 말에 대한 나의 가장 조용한 대답인 셈이다.

 

어제는 어느 국내 브랜드에서 티셔츠 두 장을 샀는데, 주문한 것이 오후 여섯 시도 되기 전에 문 앞에 와 있었다.

거대한 하나가 사라져도 세상은 멈추지 않으니,
작은 것들이 그 빈자리를 채우고 사람들은 또 다른 길을 찾아낸다.

 

어쩌면 우리는 거대한 하나에 인질로 잡히지 않고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는, 한결 가벼운 세상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가벼운 쪽에 한 표를 던졌다. 앱 하나 지우는 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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