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 산업의 공동화(空洞化) — 가운데가 사라진다
— 위에서 빠지고, 아래에서 빠지고, 남는 것
1편에서 한국 SI의 구조적 정체를 진단했습니다. 2편에서 AI가 그 구조의 결함을 가속시키는 과정을 분석했습니다.
3편에서는 예측을 이야기합니다. 이 구조가 AI와 만나면 어디로 가는가.
한 가지 먼저 환기하겠습니다. 1975년, 프레더릭 브룩스는 『맨먼스 미신(The Mythical Man-Month)』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9명의 임산부를 모아도 1개월에 아기를 낳을 수 없다."
사람을 늘리면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조율 비용이 산출물 증가를 잡아먹는다는 것이 그의 논증이었습니다. 50년 전의 통찰입니다.
그런데 한국 SI는 50년이 지난 지금도 Man-Month를 씁니다. "12명을 투입하면 1명이 12개월 걸릴 일을 1개월에 끝낼 수 있다"는 전제. 벽돌을 쌓는 일이라면 맞습니다. 소프트웨어는 아닙니다.
AI가 이 모순을 극한까지 밀어붙입니다. 한 명의 개발자가 AI 도구를 사용하면 3~5명분의 산출물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때 조율 비용은 제로입니다. 혼자니까. 그런데 같은 논리로 "5명에게 AI를 주면 25명분이 나오겠지"라고 계산하면, 산출물은 25명분인데 5명 사이의 조율 비용 + 5개의 서로 다른 AI 맥락 불일치가 폭증합니다. 12명에게 AI를 주면? 60명분의 산출물과 함께, 통합 불가능한 카오스가 도착합니다.
1명이 AI로 12개월에 할 수 있는 일을, 12명이 AI로 1개월에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이론이 아니라 50년 전에 증명된 법칙입니다.
AI가 바꾼 것은 개인의 생산성이지, 이 법칙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법칙이 SI 산업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위에서 빠진다 — 발주처의 내재화
발주처가 SI에 시스템 구축을 맡기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자체적으로 만들 역량이 없기 때문입니다. 개발팀을 꾸리려면 채용, 관리, 기술 리더십이 필요하고, 그 비용과 부담이 SI에 발주하는 것보다 컸습니다.
AI가 이 손익분기점을 바꾸고 있습니다.
내부에 개발자 2~3명을 두고 AI 도구를 활용하면, 과거에 10명 이상의 외주 인력이 필요했던 규모의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구축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립니다. 맨먼스 미신이 말해주듯, 소수의 팀이 AI와 함께 일할 때 조율 비용이 최소화되면서 오히려 대규모 외주보다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발주처가 내재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공공기관은 채용 체계가 경직되어 있고, 기술 리더십을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내재화의 문턱이 낮아졌다는 것 자체가 SI 산업에는 구조적 위협입니다. 전부가 아니라 일부만 내재화하더라도, 그 "일부"가 SI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던 중대형 프로젝트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래에서 빠진다 — 핵개인의 이탈
2편에서 분석한 시나리오를 다시 봅니다. AI를 근거로 단가가 깎이고, 등급은 유지되지만 실질적 대우가 낮아지면, 실력 있는 기술자부터 SI를 떠납니다.
이전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SI를 떠나면 갈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자기 사업을 하려면 제품이 필요하고, 제품을 만들려면 팀과 투자가 필요했습니다.
AI가 이 선택지를 바꿨습니다. 한 사람이 AI 도구로 도메인 특화 SaaS를 만들고, 월정액으로 판매할 수 있습니다. 발주처와 직계약으로 유지보수 서비스를 제공하고, 결과물 기반으로 과금할 수 있습니다. 송길영 작가가 『시대예보』 시리즈에서 말하는 "핵개인" — 조직의 이름 뒤에 숨지 않고 자기 이름으로 가치를 증명하는 개인 — 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진 것입니다.
그리고 핵개인이 빠져나갈 때, 가져가는 것이 있습니다. 수십 년간의 아키텍처 경험, 도메인 지식, 시스템 전체를 보는 눈. SI 산업에서 가장 대체 불가능한 역량이, 가장 먼저 빠져나갑니다.
가운데가 빈다
위에서는 발주가 줄어듭니다. 아래에서는 실력자가 떠납니다.
대형 SI는 살아남습니다. 그룹 캡티브와 대규모 공공 수주 네트워크가 있습니다. 다만 몸집이 줄어듭니다. 만 명이 5천 명이 되고, "사람 파는 사업"에서 "플랫폼 파는 사업"으로 전환을 시도합니다. 대마필사 — 거대한 것은 반드시 죽는다 — 가 완전한 사망이 아니라, 강제 경량화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가장 취약한 것은 중견 SI입니다. 대형처럼 그룹 울타리가 없고, 핵개인처럼 가볍지도 않습니다. 자체 제품이 없으면 AI 시대에 전환할 축이 없습니다. 대형 SI가 외주 물량을 줄이면 직격타를 받는 위치입니다.
SI 프리랜서 시장은 양극화됩니다. MM 판에 남는 사람의 단가는 바닥으로 가고, 자기 판을 만든 사람의 몸값은 올라갑니다. 같은 경력이라도, 하청 체인에서 단가를 깎이는 사람과 직계약으로 가격을 부르는 사람의 격차가 벌어집니다.
이것이 공동화입니다. SI 산업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운데가 빠지면서 위에는 축소된 대형 SI가, 아래에는 새로운 시장이, 그리고 가운데에는 텅 빈 공간이 남는 것입니다.
새로 열리는 시장
공동화의 다른 면이 있습니다. SI 산업이 쪼그라들면서, 그 주변에 새로운 시장이 열립니다.
발주처가 내재화를 시도하면 내부에 개발자는 있지만 기술 방향을 잡아줄 사람이 없는 상태가 됩니다. 풀타임 CTO를 고용할 여력은 없지만, 주 1~2일 기술적 의사결정을 도와줄 외부 전문가는 필요합니다. 바이브코딩으로 만들어진 시스템이 쌓이면, 그 시스템을 진단하고 유지 가능한 구조로 올려주는 역할이 필요합니다. 대형 SI가 관심 없는 도메인 — 소규모 학원, 제조업, 병원 — 에서 특화 SaaS가 SI 발주를 대체합니다.
이 시장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MM이 아닌 가치 기반으로 과금됩니다. 사람을 몇 명 넣었느냐가 아니라,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느냐가 가격을 결정합니다.
권력의 이동
이 시리즈를 통해 한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시스템의 가치를 누가 정의하느냐. 이것이 권력입니다.
지금까지 한국 SI에서 이 권력은 발주처에 있었습니다. 투입 원가를 뜯어보고, MM을 산정하고, 등급별 단가를 책정하는 것. 만드는 사람은 가격을 부를 수 없었습니다. 건설업에서 물려받은 이 구조가 반세기 가까이 유지되었습니다.
그러나 권력이 작동하려면 조건이 있습니다. "너 아니어도 할 사람 많아"가 성립해야 합니다. 대체 가능한 쪽은 원가를 까발려야 하고, 대체 불가능한 쪽은 가격을 부를 수 있습니다.
AI가 이 조건을 바꾸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AI가 많은 개발자를 대체 가능하게 만들면서, MM 판의 권력을 발주처에 더 집중시킵니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AI를 도구로 장착한 핵개인이 MM 판 바깥에서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만들어냅니다. 도메인 독점, 결과물 기반 과금, 직계약 관계에서는 "너 아니어도 할 사람 많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평행 시프트입니다. SI 구조 안에서 권력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작동하는 관계 자체를 벗어나는 것. 갑을 관계에서 시장 관계로. 원가 산정에서 가치 교환으로.
SI 산업은 바퀴벌레처럼 살아남을 것입니다. 건설업의 하청 구조가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이후에도 건재한 것처럼, MM 구조도 어떤 사고를 겪든 존속할 것입니다. 다만 그 안의 사람들이 갈려나갈 뿐입니다.
28년간 이 산업을 안에서 보았고, 밖에서도 보았습니다. 안에서 본 것과 밖에서 본 것이 같았습니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달라질 수 있는 문이 열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 문을 통과하는 데는 상당한 각오가 필요할 것입니다.
본 글은 필자 개인의 경험과 관점에 기반한 의견이며, 특정 기업이나 기관을 지칭하지 않습니다.
필자는 1997년부터 개발자로 일해왔습니다. SI의 구조적 문제에 회의를 느끼고 게임 업계로 옮긴 경험이 있으며, 현재는 SI 하청 체인과 결과물 기반 직계약, 양쪽에서 다른 맛의 두 세계를 즐기고 있는 현직 개발자입니다.